병마용갱 진시황릉 위치 면적 내부 발굴 크기 수은강

중국의 산시성 시안시 린퉁구에 있는 진시황의 무덤으로, 1974년에 병사와 말 등 테라코타 모형(일명 병마용)이 8천 점이나 발견되었답니다.

발견 이후에 지금까지도 발굴이 진행 중인 것인데, 진시황릉으로 추정되는 언덕은 손을 대지 않고 있답니다. 이유는 저우언라이가 지적했듯, 후손들을 위해서 발굴기술이 완벽해질 때까지 조금은 무리하게 발굴하지 않는다고 계획을 중국 정부가 세웠기 때문이랍니다.


우리가 지금 흔히 진시황릉 하면 떠올리는 병마용갱은 진시황릉 주변에 있는 구덩이랍니다. 이전에 언급했지만 진시황의 무덤은 문서 맨 위 사진에 보이는 거대한 언덕이며, 아직 파지도 않았답니다. 참고로 병마용갱은, 무덤을 만든 다음 무덤 주변에 구덩이를 파고 병마용을 넣은 후 다시 묻은 것이랍니다.

지금은 1호ㆍ2호ㆍ3호갱은 관람할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며, 산산조각난 병마용을 복원하는 작업도 볼 수 있답니다. 1~3호 병마용갱의 병마용들을 복원하는 데만 수십 년 이상이 소요될 듯한 편인데, 더 어마어마한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거나 확인된 지 얼마 안 된 병마용갱이 아직 많다는 사실이랍니다. 병마용갱을 모두 발굴하고 모두 복원하는 데만 수백 년이 걸린다고 한답니다.

당연히 진짜로 규모에 걸맞게 거대공사였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즉위 직후부터 작업에 들어가서 통일 이후부터는 총인원 60만 명을 동원해서 지었답니다. 하지만, 즉위한 이후 35년이 넘어서도 완성하지 못하고 진시황이 먼저 죽었답니다. ㅠㅠ

이후에 2세 황제 호해는 정말로 여러 동물과 진시황의 후궁과 그 자녀들, 그리고 인부들을 순장하여 무덤 공사를 끝냈답니다. 호해가 자기 일가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공자인 고(高)는 가족들이 연좌될게 두려워 호해에게 먼저 죽음을 청했기 때문에 정말로 호해가 은혜를 베풀어 자살을 허락했답니다. 이후에 나머지 남자 공자들은 시장에서 참수당하고 공주들은 사지가 찢겨 죽었다는 기록이 답니다.